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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건축 이야기] 제주 방주교회 : 물과 빛, 바람이 빚어낸 이타미 준의 마스터피스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건축사 아빠 [대한건아] 입니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굽이치는 산록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푸른 하늘과 짙은 녹음 사이로 이질적이면서도 경이로운 건축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치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듯한 한 척의 배와 같은 건물, 바로 '제주 방주교회(Church of Ark)'입니다.

 

2008년 완공 이후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주의 중산간 지형과 조응하며 그 가치를 더해가고 있는 이곳은, 단순한 관광 명소를 넘어 자연의 요소인 물, 빛, 바람, 하늘을 건축 언어로 끌어들여 장소성과 영성을 동시에 구현한 현대 건축의 걸작입니다.

 

빠르게 소비되는 디지털 이미지 시대에,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이 이 공간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는지, 공간 미학과 그 이면에 숨겨진 건축적 철학을 찬찬히 짚어보겠습니다.


1. 건축 개요 및 거장 '이타미 준'의 발자취

방주교회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공간을 탄생시킨 건축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 건축물 개요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762번길 113

설계 : 이타미 준 (Itami Jun, 본명 : 유동룡)

완공/수상 : 2008년 완공 (2009년 헌당), 2010년 제33회 한국건축가협회상 본상 수상

특징 : 구약성서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한 수공간(Water Space)과 다색 징크 패널 지붕, 목재 구조의 내부

'한국인 유동룡' 그리고 '건축가 이타미 준'

이타미 준(1937~2011)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무사시 공업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평생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던 자랑스러운 한국인 '유동룡'이기도 합니다.

당시 일본 내에서 한국식 이름으로 건축 활동을 하는 데 제약이 따르자, 그가 한국을 오갈 때 자주 이용했던 오사카의 '이타미 공항'과 절친한 지인의 이름 '준'을 합쳐 만든 예명이 바로 이타미 준입니다.

 

그의 건축 철학의 핵심은 장소의 지형, 기후, 문화적 맥락을 존중하는 '조응(調應)'과 흙, 돌, 나무, 물과 같은 원초적인 '물성(Materiality)의 온기'입니다.

제주 방주교회는 제주의 거친 바람과 하늘, 물을 설계의 능동적 요소로 끌어들인 그의 노년기 철학이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유작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2. 물 위에 뜬 노아의 방주 : 외관에 숨겨진 치밀한 설계 의도

방주교회 수공간 사진

 

방주교회를 가장 강렬하게 규정하는 것은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거울 같은 인공 수공간입니다.

세속과 성소를 구분하는 '물의 경계'

건축에서 물은 훌륭한 경계선의 역할을 합니다.

방주교회를 둘러싼 수공간은 물리적인 높은 담장을 대신해 일상적인 세속의 공간(외부)과 성스러운 영적 공간(내부)을 분리하는 보이지 않는 결계를 형성합니다.

이 물을 건너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짧은 동선은 방문객으로 하여금 일상을 뒤로하고 마음을 정돈하게 유도하는 훌륭한 전이 공간(Transition Space)이 됩니다.

정적인 매스(Mass)에 부여된 '바람의 움직임'

정적인 건축물에 시각적 동력을 부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제주의 바람'입니다.

제주의 거센 바람이 수공간에 닿아 끊임없이 잔물결을 일으킬 때, 수면에 반사된 지붕과 하늘이 일렁이며 마치 거대한 배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듯한 동역학(Dynamics)을 연출합니다.

이는 우연한 착시가 아니라, 장소의 기후를 적극적으로 읽어낸 치밀한 건축적 장치입니다.

제주의 하늘을 담아내는 모자이크, 징크(Zinc) 패널

은빛으로 반짝이는 지붕은 방주교회의 또 다른 시그니처입니다.

무광, 유광, 다크 그레이 등 다양한 마감 처리를 한 징크 패널과 유리, 나무를 규칙적으로 배열하여 제주의 하늘을 마치 모자이크처럼 담아냅니다.

시간대와 날씨에 따라 지붕의 색감이 다채롭게 변하는 것은 이러한 재료 선택이 빚어낸 의도된 결과입니다.

또한, 지붕 양 끝의 선을 하늘을 향해 미세하게 추켜올린 형태는 건축물이 하늘과 닿고자 하는 시각적 염원을 표현하며, 한라산 중산간이라는 높은 지리적 위치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하늘의 교회'라는 별칭을 완성합니다.

 

3. 빛과 그림자가 직조하는 내부 공간의 숭고함

제주 방주교회 내부 예배당 사진

 

조형적이고 강렬한 외관에 비해, 예배당 내부는 놀랍도록 차분하고 정제되어 있습니다.

(실제 예배가 진행되는 공간인 만큼 내부 관람은 교회 운영 상황에 따라 제한될 수 있으니, 방문 시 허락된 공간 안에서 고요히 감상하는 매너가 필요합니다.)

선체를 연상시키는 목조 구조

내부로 들어서면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묵직한 목조 프레임들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이 구조는 마치 거대한 목조 선박을 뒤집어 놓은 듯한 형태를 띠며 '방주'라는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킵니다.

동시에 방문객들에게는 커다란 모선의 품에 안긴 듯한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합니다.

절제된 빛의 유입과 산란

이타미 준은 빛의 유입을 세밀하게 조절했습니다.

예배당 내부에는 시선 높이에 맞춰 긴 수평창이 나 있는데, 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바깥 수조의 잔물결에 한 번 필터링되어 들어오는 부드러운 간접광입니다.

천장과 벽을 타고 흐르는 은은한 빛의 산란은 화려한 장식 없이도 목재의 질감과 빛의 층위만으로 공간 전체에 영적인 무게감과 숭고함을 부여합니다.

 

4. 비하인드 스토리 : 예술성과 영성의 만남

이 훌륭한 건축물 뒤에는 흥미로운 탄생 배경이 있습니다.

방주교회의 건축주는 우진산전의 김영창 회장입니다.

평소 제주를 자주 찾았던 그는, 방주교회 인근의 타운하우스 '비오토피아'와 이타미 준이 설계한 수(水)·풍(風)·석(石) 미술관의 건축 미학에 깊은 감명을 받고 망설임 없이 그에게 교회 설계를 의뢰했습니다.

단순한 종교적 필요를 넘어 장소의 본질을 읽어내는 건축가의 철학과, 건축을 통해 영성을 표현하고자 했던 건축주의 깊은 공감대가 만났기에 이 거대한 '예술성과 영성의 합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 맺음말 ] 사진 너머, 공간이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

방주교회는 맑은 날 지붕에 반사되는 하늘, 바람이 일으키는 물결, 일몰 시 징크 패널이 머금는 따뜻한 색감 등 계절과 시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얼굴을 드러냅니다.

이는 단편적인 디지털카메라 렌즈만으로는 온전히 담아내기 어려운 감동입니다.

 

한 번쯤은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인공 수조를 스치며 불어오는 바람 소리, 물의 움직임, 그리고 목재의 온기를 직접 피부로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이타미 준이 남긴 이 마지막 아날로그 건축의 정수는, 고요한 관찰과 성찰을 통해 우리에게 더 깊은 층위의 위로와 평화를 건네고 있습니다.

 

제주 여행에서 건축의 아름다움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종교의 유무를 떠나 이 훌륭한 건축적 서사를 반드시 직접 경험해 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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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laimer : 본 포스팅은 개인적인 시각과 해석을 바탕으로 방주교회의 건축적 특징과 공간을 분석한 칼럼입니다. 본 내용은 방주교회, 유동룡 건축가님 측의 공식적인 설명 및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